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20

빌레몬서,
이름값을 하게 된
도망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이름의 종이
형제가 되어 주인에게 돌아간 이야기

빌레몬서 1장 (1–25절)
여는 글

빌레몬서는 한 장짜리 편지예요. 성경을 넘기다 보면 디도서와 히브리서 사이에서 휙 지나가기 쉬워요. 그런데 이 짧은 편지 안에 한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들어 있어요.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친 종이,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믿고, 이제 주인에게 돌아가는 이야기예요. 😄 이 편지를 들고 주인 집 문 앞에 선 그 사람의 심장은 얼마나 뛰었을까요.

그 짧은 편지 속에 재밌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어요. 온 교회 앞에서 읽힌 개인 편지, 세 번 되풀이되는 "마음", 이름을 가지고 한 말놀이, "아마도"라는 한 단어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 바울이 친필로 쓴 차용증, 비슷한 시대 로마 귀족의 편지와의 비교, 그리고 50년 뒤 에베소 교회의 감독 이름까지요. 그 흔적을 따라가면 한 분이 보여요. 우리의 빚을 자기 앞으로 계산하신 예수 그리스도예요.

1부

빌레몬서는 어떤 책일까?

도망친 종 한 사람을 위해 쓴 가장 짧은 바울 서신

빌레몬은 골로새에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이었어요. 자기 집을 교회 모임 장소로 내어 줄 만큼 넉넉했고(2절), 바울을 통해 믿음을 갖게 된 사람이었어요(19절). 그의 종 오네시모가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쳤다가(18절), 감옥에 갇힌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었어요(10절). 바울은 오네시모를 다시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며 이 편지를 써요. 골로새서와 같은 때에, 같은 사람들 편으로 보냈어요(골 4:7-9). 로마에 갇혀 있던 주후 60–62년 무렵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가장 짧은 바울 서신스물다섯 절, 헬라어로 약 335단어예요. 바울의 이름으로 된 열세 편지 가운데 가장 짧아요. 한 번 소리 내어 읽는 데 3분이면 충분해요.
개인 편지이면서 교회 편지빌레몬 한 사람에게 보낸 편지 같지만, 받는 사람에 압비아와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2절)까지 들어 있어요.

※ 바울이 갇혀 있던 곳을 로마가 아니라 에베소로 보는 학자들도 있어요. 오네시모가 정말 도망친 것인지, 주인과의 문제를 풀기 위해 일부러 주인의 친구인 바울을 찾아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뉘어요.

빌레몬서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명령 대신 간청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8-9절). 사도의 권위를 내려놓고 부탁해요.
2
이름으로 한 말놀이
"오네시모"는 "유익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바울은 이 이름을 가지고 재치 있게 말을 풀어요(11절).
3
종 이상, 형제로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16절). 신분의 벽을 넘는 복음의 힘을 보여 줘요.
4
친필 차용증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19절). 남의 빚을 자기가 갚겠다고 서명해요.
5
열린 결말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21절). 빌레몬이 어떻게 했는지는 편지에 나오지 않아요.

빌레몬서의 중심에는 이 말씀이 있어요.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16절). 복음은 한 사람의 신분을 바꾸기 전에 관계를 바꿨어요. 주인과 종이 주 안에서 형제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 일을 가능하게 한 바울의 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을 그대로 닮았어요.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18절).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온 교회 앞에서 읽힌 개인 편지부터 에베소 감독의 이름까지

1

개인 편지를
온 교회 앞에서 읽다

빌레몬서 1:1-3 · 21-22 · 골로새서 4:17

편지 첫머리를 보면 받는 사람이 꽤 많아요.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1-2절). 압비아는 빌레몬의 아내, 아킵보는 아들일 거라고 보는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빌레몬의 집에 모이는 교회 식구들 모두가 이 편지를 함께 들었어요.

생각해 보면 빌레몬 입장에서는 난감한 편지예요. 😄 도망쳤던 종이 돌아와 서 있고, 교회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바울의 편지가 읽혀요. "그를 형제로 받아 달라"는 부탁을 모두가 듣고 있어요. 게다가 끝에는 이런 말도 있어요.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22절). 바울이 직접 와서 확인하겠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건 빌레몬을 압박하려는 게 아니에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그 사람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함께 짊어지는 일이라는 거예요. 참고로 아킵보는 같은 날 골로새 교회에서 읽힌 골로새서에서도 이름이 불려요.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골 4:17). 아킵보는 그날 두 번이나 공개적으로 이름이 불린 셈이에요.

※ 압비아와 아킵보가 빌레몬의 가족이라는 것은 본문에 나오지 않는 추정이에요.

돌아보기
용서와 화해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교회가 함께 지는 사랑의 짐임을 기억합니다.
2

편지에 세 번 나오는
"마음"이라는 단어

빌레몬서 1:7 · 12 · 20
7절"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12절"그는 내 심복이라"
20절"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이 짧은 편지에 같은 단어가 세 번 나와요. 스플랑크나라는 말인데, 원래는 몸속의 장기, 곧 "속 깊은 곳"을 가리켜요. 우리말로 "애간장이 탄다"고 할 때의 그 간장 같은 말이에요. 예수님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마 9:36)고 할 때의 말도 같은 뿌리예요.

바울은 이 단어로 편지를 짜요. 먼저 7절에서 빌레몬을 칭찬해요.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그다음 12절에서 오네시모를 소개해요. "그는 내 심복이라". 여기 "심복"이 바로 같은 단어예요. 오네시모는 바울의 애간장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20절에서 마무리해요.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 바울의 논리가 보이죠? "너는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사람이야. 그런데 오네시모는 내 마음 그 자체야. 그러니 내 마음도 시원하게 해 줘." 7절과 20절에는 "평안하게 하다"라는 말까지 똑같이 쓰였어요. 칭찬이 부탁이 되고, 부탁이 사랑이 되는 편지예요.

돌아보기
나로 말미암아 다른 성도들의 마음이 시원해지고 있는지 돌아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한 사람을 품습니다.
3

무익하던 "유익한 사람"이
이름값을 하다

빌레몬서 1:10-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아크레스톤)
VS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유크레스톤)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유익한", "쓸모 있는"이라는 뜻이에요. 그 시대에 종들에게 흔히 붙이던 이름이었어요. 주인들이 "쓸모 있게 일하라"는 뜻으로 지어 준 거죠. 그런데 이 오네시모는 이름과 정반대였어요. 손해를 끼치고 도망쳤거든요. 😄 이름값을 전혀 못 한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써요.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11절). 이름의 뜻을 가지고 한 말놀이예요. 쓸모없던 "쓸모 있는 사람"이 이제야 이름값을 하게 되었다는 거죠.

그리고 재밌는 게 하나 더 있어요. 10절을 헬라어 순서대로 읽으면 이래요. "내가 너에게 간구한다, 나의 아들을 위하여, 내가 갇힌 중에서 낳은, 오네시모를." 이름을 맨 마지막에 둬요. 빌레몬이 그 이름을 듣고 얼굴이 굳기 전에, 먼저 "내 아들", "갇힌 중에서 낳은" 사람이라고 소개한 거예요. 바울은 오네시모를 도망친 종이 아니라 믿음으로 낳은 아들로 먼저 보게 했어요.

※ "쓸모 있는"(크레스토스)과 "그리스도"(크리스토스)의 발음이 그 시대에 비슷하게 들렸기 때문에, 이 말놀이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 쓸모 있게 되었다"는 뜻까지 담겼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요. 추정이에요.

돌아보기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새롭게 하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4

"아마도"라는 한 단어에
담긴 하나님의 손길

빌레몬서 1:15-16 · 창세기 50:20

15절에서 바울은 아주 조심스럽게 말해요. "아마 그가 잠시 동안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오네시모가 "도망쳤다"고 하지 않고 "떠나게 되었다"고 해요. 헬라어로는 수동태예요. 오네시모가 스스로 떠난 것 같지만,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이 장면은 요셉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요. 형들에게 팔려 간 요셉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 사람의 잘못과 실패도 하나님의 손에서는 선을 이루는 재료가 돼요. 잠시 잃은 종이 영원한 형제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바울이 "아마"라고 말한 게 참 좋아요. 😄 사도도 하나님의 섭리를 함부로 단정하지 않았어요. 남의 아픔 앞에서 "다 하나님의 뜻이야"라고 쉽게 말하지 않은 거예요. 대신 조심스럽게, 그러나 믿음으로 말해요. 하나님이 이 일도 선으로 바꾸고 계실지 모른다고요.

돌아보기
지나간 실패와 헤어짐 속에서도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5

"내 앞으로 계산하라"
바울이 쓴 친필 차용증

빌레몬서 1:17-19

17–19절은 이 편지의 절정이에요.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이 말은 장부에 누구 앞으로 달아 두라는 상업 용어예요. 오네시모의 빚을 바울의 계정으로 옮기라는 거예요.

그리고 바울은 펜을 직접 잡아요.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19절). 그 시대의 차용증은 빚진 사람이 자기 손으로 "내가 갚겠다"고 써서 서명했어요. 바울이 편지 한가운데에 친필 차용증을 써 준 거예요. 😄 그러고는 바로 한마디를 덧붙여요.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말하지 않는다면서 다 말했어요. 빌레몬도 바울에게 영혼의 빚을 진 사람이었으니까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빌레몬서 서문에서 이 장면을 이렇게 풀었어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바울이 빌레몬 앞에서 오네시모를 위해 하고 있다고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어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오네시모라고요. 우리의 빚을 자기 앞으로 계산하시고, "그를 나처럼 받아 달라"고 아버지께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이세요.

돌아보기
내가 갚을 수 없던 빚을 자기 앞으로 계산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도 누군가의 짐을 대신 지는 사랑을 구합니다.
6

비슷한 부탁,
전혀 다른 두 편지

빌레몬서 1:8-21
플리니우스가 사비니아누스에게
"그의 눈물과 너의 너그러움을 생각해서 이번만 용서해 주게"
VS
바울이 빌레몬에게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빌레몬서와 자주 비교되는 편지가 있어요. 로마의 귀족이자 문필가인 소(小) 플리니우스가 2세기 초 친구 사비니아누스에게 보낸 편지예요. 사비니아누스의 해방 노예가 주인을 화나게 하고는 플리니우스를 찾아와 울며 용서를 빌었어요. 플리니우스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그를 용서해 달라고 부탁해요.

겉보기엔 아주 비슷한 부탁이에요. 그런데 내용을 보면 달라요. 플리니우스는 그 사람의 눈물과 뉘우침, 그리고 친구의 너그러운 성품에 호소해요. 자기가 그 해방 노예를 따끔하게 꾸짖었다는 말도 해요. 😄 그리고 다음에 또 이러면 다시는 편들지 않겠다고 겁도 줬대요. 용서는 해 주되, 위아래는 분명하게 남아 있는 편지예요.

바울은 오네시모가 얼마나 뉘우쳤는지를 늘어놓지 않아요. 대신 그가 누구가 되었는지를 말해요. 내 아들, 내 심복, 주 안에서 사랑 받는 형제요. 그리고 그의 빚을 자기가 지겠다고 해요. 플리니우스의 편지는 주인의 너그러움에 기대요. 바울의 편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생긴 관계에 기대요. 복음은 용서를 베푸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가족을 만들어요.

※ 플리니우스의 편지는 그의 서간집 9권 21번 편지예요. 바울 시대보다 40년쯤 뒤의 것이지만, 당시 사회에서 이런 부탁이 어떻게 오갔는지 보여 주는 좋은 비교 자료로 학자들이 자주 인용해요.

돌아보기
누군가를 용서할 때, 봐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으로 받아들입니다.
7

50년 뒤 에베소 교회의
감독 오네시모

빌레몬서 1:21 · 골로새서 4:9

빌레몬서는 열린 결말로 끝나요.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21절).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받아들였는지, 더 나아가 그를 자유롭게 해 주었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아요. 그런데 몇 가지 흔적이 남아 있어요.

먼저 이 편지가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는 사실이에요. 만약 빌레몬이 부탁을 거절했다면, 이 편지를 소중히 간직해 교회들에 돌릴 이유가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같은 때 보낸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골 4:9)라고 소개하며, 두기고와 함께 교회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세워요.

그리고 약 50년 뒤, 순교를 앞두고 로마로 끌려가던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써요. 주후 110년 무렵이에요. 그 편지 첫머리에서 그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을 칭찬하는데, 그 이름이 오네시모예요. 이그나티우스는 그를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의 사람이라고 불렀어요. 만약 이 사람이 빌레몬서의 오네시모라면, 도망친 종이 에베소 교회의 목자가 된 거예요. 그리고 바울의 편지들을 모아 교회에 전하는 일에 그가 앞장섰을지도 모른다고 보는 학자도 있어요.

※ 이그나티우스가 말한 에베소의 감독 오네시모가 빌레몬서의 오네시모와 같은 사람인지는 확인할 수 없어요. 오네시모는 흔한 이름이었어요. 그가 바울 서신을 모으는 일에 참여했다는 것도 일부 학자들의 추정이에요.

돌아보기
한 사람의 과거보다 그 안에서 일하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며, 오늘 내 곁의 "오네시모"를 형제로 맞이합니다.
맺는 글
무익하던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유익한 형제가 되다

빌레몬서는 교회사에서 큰 사건을 다룬 책이 아니에요. 도망친 종 한 사람, 속상한 주인 한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 선 감옥의 사도 한 사람의 이야기예요. 그런데 그 작은 이야기 안에 복음 전체가 들어 있어요. 빚진 사람이 있고, 그 빚을 대신 지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다시 가족이 되는 이야기예요.

우리는 모두 오네시모예요. 하나님께 쓸모없던 사람, 빚지고 도망쳤던 사람이에요. 그런 우리를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자기 아들로 삼으시고, 아버지 앞에 서서 말씀하셨어요. "그를 나처럼 받아 주십시오. 그의 빚은 내 앞으로 계산하십시오." 그 은혜로 우리는 이제야 이름값을 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1절)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